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매튜 B. 리지웨이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> "전쟁터에서는 어느 하나 귀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." "하느님이 보실 때는 장군이 전사한 것이나 소총수 하나가 쓰러진 것이나 똑같이 귀한 목숨입니다. 각 개인의 존엄성이야말로 서구 문명의 기초라는 사실을 부대장들은 모두 명심해야 합니다." >---- >데이비드 핼버스탬, 콜디스트 윈터, pp. 750 - 751 [[미국 육군]] [[군인]]. 제2차 세계대전에는 미 육군 [[공수부대]] [[사단장]]과 [[군단장]]으로 유럽전선에서 참전했다. [[6.25 전쟁]]이 한창이던 [[1950년]] [[12월 23일]]에 [[교통사고]]로 순직한 미 제8군 사령관 [[월튼 워커]] [[중장]](사후 [[대장(계급)|대장]]으로 추서)의 후임으로 [[6.25 전쟁]]에도 참전하였고 맥아더의 뒤를 이어 유엔군사령관에도 취임하였다. 제8군 사령관으로 취임하자마자 강인한 [[카리스마]]와 뛰어나고 과감한 전략, 전술을 통해 그 직전까지만 해도 [[유엔군사령부|유엔군]]의 패색이 짙던 전세를 1951년 봄부터 다시 역전시켜 버렸다. 그때까지만 해도 유엔군은 [[더글러스 맥아더]]가 1950년 10월 이후 [[중국 인민지원군]]에게 밀리면서 절망적인 후퇴를 거듭하고 있던 상황이었다. 당시 미군 합참본부는 한반도에서 철군하기로 의견을 이미 모았을 정도였다. 그러나 8군사령관 리지웨이가 중공군에게도 약점이 있음을 설득하여 합참의 철군 의견을 무력화시켰다.[* 당시 미군 합동참보본부는 중공군의 공세가 계속 거세지자 '한반도를 포기하고 가능한 빨리 철수' 할 것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승락까지 받았다고 한다. 그러나 리지웨이 장군은 미군 합참본부의 한반도 철수 의견에 반대하였다. 그리고 철군을 지휘하러 온 미군 육참총장 콜린스 대장이 보는 앞에서 정찰작전(울프하운드작전)을 성공리에 수행함으로써 보급이 이미 한계에 달한 중공군이 더 이상 총공세를 펼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. 이 결과 미군 합참본부는 철군 계획을 보류하고 반격을 결심하게 되었다.] 그리고 중공군 참전으로 핵무기 사용을 주장하며 이성과 리더십을 상실해버린 나머지 1951년 4월 해임되어버린 [[맥아더]]를 대신하여, 제2대 [[유엔군사령부|유엔군]] 사령관 및 미 극동군 사령관으로 취임하여, 중공군의 진격을 끝내 저지하고 대한민국을 지켜냈다. 이런 점으로 미루어보건대 6.25 전쟁에서 한반도의 [[적화통일]] 저지에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